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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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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년 3월 영국·벨기에 주차 공사관 3등 참사관으로 임명되어 영국 런던에 공사 민영돈과 함께 부임하였다.

 

 이한응은 1904년 1월 13일 영국 대외사무소(Foreign Office)를 방문하여 한반도 정세분석에 관한 10쪽의 서한과 메모를 전달하는 것으로 공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한응은 영국 정부가 극동, 특히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면서 한국의 독립과 주권 그리고 영토보존 보장 등 5개항을 영국 정부가 보장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약소국의 대표였고 예상대로 당시 외부장관인 랜즈다운 경을 비롯한 영국 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나라의 외교권이 빼앗기는 을사늑약을 앞두고 1905년 5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고종의 특명으로 시신은 용인으로 옮겨져 안장되고 장충단 배향 및 내부협판에 추증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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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만나는 이한응

EU 및 영국 국기

MISSION.독립자금을 획득하라. 

영국 정부에 한국의 독립과 주권, 영토보장 등을 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인물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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